이민족 풍속의 일소는 탁발씨처럼 해야 한다 발언록








예부상서(禮部尙書) 호영(胡濙) 등이 상주했다.

"저번에 산동(山東) 좌참정(左參政) 심고(沈固)가 말하기를, 중외(中外) 관사(官舍)의 군민(軍民)들이 모자를 쓰거나 옷을 입는 것이 오랑캐 제도의 풍습이었습니다. 말하고 궤배(跪拜)하는 것도 오랑캐의 풍속에서 배웠으며, 갓끈을 드리우고 깃털로 장식했는데 정수리는 뾰족한데다 소매는 짧습니다. 중국 사람이 견융(犬戎)의 풍속을 본받아 귀한 것을 망각한 채 천한 것을 따른 셈이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옛날 북위(北魏)는 근본이 호인(胡人)이었으나,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후엔 오랑캐 풍속을 금지시켰습니다. 하물며 성상(聖上)의 교화(敎化)와 법도는 지난날보다 높은데 어찌 허물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산동 우참정(右參政) 유련(劉璉)도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도찰원(都察院)에 방(榜)을 내도록 명하시어 감찰어사(監察御史)로 하여금 순안(巡按)하여 엄금하게 하십시오."

이를 그대로 따랐다.


- by 명 영종실록(明英宗實錄) 권(券)99 정통(正統) 7년(1442) 12월 3일조(條) 항목에서 발췌



명조(明朝)가 개국한 지 70여년, 북경 천도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경사(京師)와 그 인근에선 관민을 불문하고 몽골풍 잔재가 짙게 횡행하고 있으니, 이를 단속하고 교정시켜 한(漢) 문화의 부흥은 물론 예치와 교화의 모범을 보이시라는 대신의 상소문쯤 되시겠다. 혈통은 선비족 오랑캐 출신이지만 철두철미 중국적인 것을 추구하며 동화된 위나라 효문제도 해냈건만, 탁발씨보다 우월한 정통제 폐하느님께서 걔보다 못할 것은 없다능!

이 정도의 뉘앙스라 보면 이해가 빠를 듯 싶은데, 초원으로 쫓겨난 그 천한 생면부지 오랑캐 떨거지들한테 포로로 잡혀가 풍찬노숙하고, 징검다리 재위 기록까지 세우게 될 줄이야 저 시점에서 누가 상상이나 했으련만은.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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