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로 보는 구(舊) 경동철도(京東鐵道) 협궤열차 사진집




              인천 방면으로부터 소금을 적재한 후 수원역에 도착해 하적(下積) 대기중인 '혀기' 11형 증기기관차
              일본차량(日本車輛)과 히다치(日立)에서 발주받았던 협궤선 증기차들은 1977년까지 운행되었다. 


           플랫폼에 정차중인 기관차, 1944년 수원역 운전 사무소에서 조립된 이래 30여년간 협궤 선로를 달렸다.   
           사진이 촬영된 68년도 기준으로 한국 국내의 현역 혀기형 증기기관차는 총 7대만이 잔류하고 있었다. 


             협궤선 화물차에 실려진 소금을 경부본선(京富本線) 방면으로 운반하기 위한 작업을 준비중인 광경
             경기만에서 산출된 천일염을 수송하려는 개통 당초의 기능은 증기차가 퇴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협궤 디젤동차. 1965년 인천 공착장에서 제조되었으며, 수인 ・수려선 전용으로 운행했던 여객차이다. 
             수인선이 폐선될 순간까지 경기도 중남부 일대의 오지를 누비며 서민의 발이 되어 준 꼬마열차였다.    
 

           경기 내륙의 산간지 일대를 횡단한 수려선 철길, 1일 5~6회 편성으로 여객차가 수원과 여주를 왕래했다.
           지역 물류와 여객 운송의 동맥이었던 협궤철도는 60년대부터 도로 교통과의 경쟁에 밀려 쇠락해진다.


             메주고개 길목에 자리잡은 멱조현 터널 전경, 이 굴다리만 지나면 용인군의 중심부로 들어가게 된다.
             남한의 협궤선 구간을 통틀어 증기차 견인 열차가 통과하는데 난이도가 가장 까다로왔던 코스였다. 


            우측에 금학천(金鶴川)을 끼면서 한남정맥(漢南正脈)을 배경삼아 용인역 방향으로 펼쳐진 협궤 선로
            군청 소재지인 용인은 이천 ・여주와 더불어 수려선 철도의 주요 기착지이자, 상권 요지이기도 했다.  


            용인역에 도착해 승객을 하차시키는 여주행 열차, 동차와 객차가 하나씩 연결된 2량 편성의 여객차다.
            운송 실적이 급감하기 이전의 수려선은 수원과 지역 군 단위의 중핵 상권들을 묶어주는 촉매제였다.  


             여주를 향해 떠나는 열차, 당시 수려선 전 구간을 동차로 일주하는 데엔 2시간 반 가량이 소요되었다.
             

             용인역사 전경, 급수 시설이 구비된 보통역으로 전성기엔 이 정거장에서 발착한 열차 편성도 있었다.       
             협궤철도가 운행을 중지한 후 국도가 뚫리고,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현재는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수원역 인입선상의 혀기 1형 기관차, 1952년 미(美) 육군이 미쓰비시에 발주 ・제작해 들여온 차량이다.
            국내의 협궤 증기기관차 가운데 유일한 푸러형이었으며, 퇴역 후 현재는 서울 화랑대에 전시중이다. 


            협궤선 화물차, 휴전 직후엔 동차 및 객차가 다수 소실되버려 화차로 여객까지 수송한 전력도 있었다.


           화성군 반월면(半月面)에 소재한 일리역(一里驛) 정거장, 수원으로 가는 상행선 열차가 진입하고 있다.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던 이곳은 20년 후 안산선 전철이 들어오면서 '한대앞역'으로 개축했다.  


            시흥군의 군자(君子) 염전지대를 횡단하며 인천 방면으로 이어진 수인선 철길, 좌측은 일반 논밭이다.
            1920년대 경기만 간척에 수반해 조성된 이들 염전은 남선(南鮮) 굴지의 소금 산지로 각광을 받았다.


           소래(蘇萊) 철교의 선상에서 바라본 포구 전경, 시흥군과 인천시 남구(南區)를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극심한 조수 간만의 차이와 갯벌로 말미암아 난공사를 감수했다지만, 일약 명물로 남게 된 교각이다. 


            남동역 입구에서 송도(松島) 방향으로 촬영한 장면, 바다와 염전 사이의 제방 위로 철로가 놓여져 있다.
            80여만 평의 규모를 자랑하며 천일염을 끝없이 제공했던 남동 염전엔 5공 시대 산업 공단이 들어섰다. 


             염전과 갯마을을 뒤로한 채, 쾌속으로 달리는 열차 차창에서 시야에 들어온 송도 근방의 전원적 풍경
       

           송도역에서 소금을 싣고 대기중인 무개화차, 화물 운송이 중지될 때까지 수인선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전방에 보이는 구릉은 '조개 고개'인데, 열차가 왕래하게끔 절개시킨 협곡 사이로 선로를 부설해놨다. 


           종착지 남인천역에 도착한 협궤열차, 수원으로부터 52km 거리를 주파하는데 1시간 50분이 소요되었다.
           '수인역(水仁驛)'이란 별칭으로도 알려졌던 이 역사는 인천항 도크의 확장 공사로 1973년 폐쇄당했다.   


           남인천역 구내의 급수탑 앞으로 견인된 혀기 11형 증기기관차, 우측의 역사 쪽으로 회차 시설이 보인다.


            동(同) 기관차의 후미를 촬영한 모습, 기초적인 점검만 이뤄졌을 뿐 주요 수리는 수원역에서 감독했다.


            남인천역의 가솔린 동차, 개통 초기 경동철도가 도입했지만 성능 저하와 노후화로 66년도에 퇴역했다.
            경성 공장에서 조립된 전전(戰前) 일본식 3등 객차의 디자인을 취한 차량이다. 1963년 1월 31일 촬영    


           수원역 정차장으로 진입중인 혀기 8형 증기차 견인의 화물차, 그 뒤로 급수탑과 정비 사무소가 보인다. 


             대여섯량의 화차를 이끌고 일정을 마무리하려는 혀기 8형 증기차, 통표가 역무원에게 전달되고 있다.
             1934년 히다치 사에서 제조한 기관차로 촬영 이듬해 퇴역했으며, 국립 서울 과학관으로 기증되었다.


           플랫폼 앞에 정차하는 기관차, 유개화차 내부에 쌀가마를 비롯한 각종 화물들이 적재된 것이 눈에 띈다.
           화물 수송이란 경제성 차원에서 수려선의 물류는 1966년에 피크를 찍었으나, 이후 급속히 하락해갔다. 



덧글

  • KittyHawk 2018/12/28 13:47 # 답글

    중간에 협궤 기관차를 미군이 미츠비시에 발주해 들여오기도 했다는 설명과 미군 관계자가 해당 기관차에 타고 있는 사진을 보니 철도 박물관에 주한미군 사령관용 객차가 전시되어 있는 게 기억납니다. 해방 정국과 625 이후 미군이 어느 선까지 한국 철도에 관여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더군요.
  • 2018/12/29 18: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진보만세 2019/01/01 00:16 # 답글

    귀한 사진과 설명 글월 잘 읽었습니다.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강건하시길 바래요 ^^
  • 명탐정 호성 2019/04/28 14:10 # 답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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