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검둥이들한테 자유를 주어야 하는데? 세계사








"아프리카는 산업을 위한 원자재, 주민을 위한 식량, 인구 과잉의 해소를 위한 토지, 실업자를 위한 노동, 생산물을 위한 시장을 유럽에게 제공할 수 있다... 유럽이 단합되지 않으면 아프리카를 얻을 수 없다. 흑인종이 그들에게 속한 지구의 한 부분을 발전시키거나, 문명화하지 못한다면 백인종이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유럽이 아프리카에서 손을 뗀다면 그 대답은 이렇다. 혼돈과 무정부 상태, 비참함, 그리고 모든 부족 사이에서 벌어질 전쟁이 그것이다."

- by 유럽 제국에 있어서 아프리카 대륙이 지닌 잠재적 가치와 문명 개화의 계몽주의 책무를 상기시키며
                               리하르트 폰 쿠덴호베-칼레르기 백작(Graf Richard von Coudenhove-Kalergi)



케네디 시절 미소(美蘇) 대결의 중심 무대는 여전히 유럽이었으나, 제3세계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졌다. 이 문제는 미소간의 긴장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엔 미국과 서유럽 우방들간에도 긴장이 맴돌게 하였다. 우리는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에 대해 구두로 표명되진 않았지만, 일종의 업무 분담을 하고 있었다. 몇몇 서방 국가들은 과거 아프리카의 식민 세력이었고, 또한 아프리카에 대해 우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아프리카 국가들에 접근하기가 훨씬 쉬운 입장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외국 원조의 대부분을 아프리카에 집중시켰고, 그곳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케네디-존슨 행정부 시절엔 아프리카가 받은 외국 원조의 75%가 서유럽으로부터 왔으며, 그 나머지만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항상 미국을 아프리카의 새로운 동반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같은 태도는 국무성의 몇몇 동료들, 특히 아프리카 주재 미국 외교관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그들은 미국이 모든 아프리카 국가의 수도에서 '거물' 노릇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그들을 진정시키려 하자, 국무성의 아프리카국(局) 직원 가운데 몇몇은 내가 아프리카에 무관심하다고 결론지었다. 나는 단지 서구 우방들과 우리가 비공식적으로 정한 업무 분담은 아프리카의 일을 다루는 데 있어서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의식적인 정책 차원에서 행해진 것이었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전세계의 일을 모두 도맡아 할 수는 없으므로 우선 사항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 G. 메넌 윌리엄스(G. Mennen Williams)는 담당 지역이 낮은 순위로 책정된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미국의 아프리카 정책은 내부에서도 논쟁거리가 되었다.

G. 메넌 '소피(Soapy)' 윌리엄스는 역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인물에 속한다. 그는 근면하고 충실했으며, 항상 사려깊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우리는 의견이 엇갈렸다. 그는 당연히 아프리카에 되도록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했으며, 원조도 더 많이 제공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그의 입장은 우리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소피와 다른 사람들이 지적한 문제로는 국무장관인 내가 아프리카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프리카가 나의 우선 순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음은 분명했지만, 사실상 나는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만 겨우 방문하더라도 그 나머지 국가들의 분노를 사지 않으면서 찾아갈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케네디-존슨 행정부는 아프리카를 전혀 무시할 수 없었다.

미국은 아프리카와 아무런 안보 동맹을 맺고 있지 않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아프리카가 미국의 안보에 예를 들어 유럽이나 중남미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미국 뿐만 아니라 소련의 세력도 제한시기길 바랬다. 케네디와 존슨은 미국의 아프리카 정책은 식민지의 독립과 신생국의 탄생을 지지하고, 그 신생국들에 대한 원조 제공을 유지하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직면해야 했던 첫 번째 문제는 앙골라에서의 포르투갈의 식민주의와 관련된 것이었다. 취임 2개월 만에 우리는 유엔 안보리에서 앙골라의 자립을 주장하는 중요한 투표를 던져야 할 상황이 되었다. 국무성 일각에선 포르투갈은 나토 우방이고, 아조레스(Azores)의 해 ・공군 기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으므로 리스본을 성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가 이 결의안에 반대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케네디에게 이 결의안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했다. 미국은 말 뿐이 아니라 실제로도 식민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결의안을 지지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케네디가 나의 건의를 받아들인 덕분에 나는 기뻐했지만, 포르투갈의 독재자 안토니우 살라자르(António Salazar)를 만나 앙골라와 아조레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나를 리스본으로 파견했을 때는 별로 탐탁지가 않았다. 나는 살라자르를 그의 관저에서 만났는데, 그의 집무실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불빛도 희미했다. 그는 냉담한데다, 거의 현실 세계를 떠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에게 식민주의가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것에 나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국민들에게조차 허용할 수 없는 것을 아프리카 식민지에 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 by 딘 러스크(Dean Rusk) 著 <냉전의 비망록> 제11장 '아프리카와 콩고'에서 발췌




            1960년 8월 9일, 엔리케 왕자의 서거 5백주년을 맞아 발견 기념비 제막식 축전에 참석한 살라자르 수상
            근세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올렸던 영광과 유산이 깃든 제국을 포기할 의사가 그에겐 추호도 없었다.



덧글

  • 2019/12/20 19: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12/20 20: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터프한 둘리 2019/12/20 20:58 # 답글

    살라자르의 패기 쩝니다.
  • 존다리안 2019/12/20 22:20 # 답글

    미국은 그나마 반제국주의적인 국가였군요. ㅜㅜ
  • 무명병사 2019/12/21 00:06 # 답글

    세상에...
  • RuBisCO 2019/12/21 09:58 # 답글

    실제로 손을 놓아버린 지금 벌어진 그 참상을 보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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