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세 천재 물리학자가 바라본 중국인과 그 실상 발언록








11월 9일 아침에 우리는 홍콩에 도착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항해 기간 도중에 내가 보았던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섬에는 바로 옆의 본토와 비슷하게 산들이 길게 뻗어 있으며, 두 곳 사이가 항구로 작고 가파른 섬들이 많다. 모든 것이 알프스 구릉 지대로부터 반쯤은 빠진 것 같았다. 도시는 약 500m 높이의 완만하게 경사진 산기슭에 테라스처럼 놓여 있었고, 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했다. 유대인 공동체에서 환영연을 베풀려 하자 정중히 거절했지만, 2명의 유대인 사업가가 우리 일행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자동차로 홍콩 섬을 일주하러 나갔다. 바다와 피요르드(fjord) 같은 만(灣)들, 무궁무진하게 다채롭고도 장엄한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우리는 미국식 고급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우리 안내원 2명이 나랑 이 나라와 과학에 대해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세속적 즐거움에 대해서도 대단한 친밀감을 드러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항해용 범선들과 겉보기에 매우 쾌활한 듯한 중국식 장례식, 고통받는 사람들, 하루에 겨우 5센트만 받으면서 돌을 깨거나 운반중인 남녀(男女)들로 이루어진 중국인 어촌을 목도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비정한 경제적 기계에 의해 그들의 생식력을 가혹하게 처벌받는 셈이다. 내 생각에 그들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거의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를 보는 것은 슬펐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 전 놀라울 만큼 훌륭한 조직과 더불어 성공적인 급료 파업을 단행했던 모양이다. 오후에 유대인 클럽 회관을 방문했는데, 상당히 높은 고도의 멋진 정원에 자리잡아 도시와 항구의 경관이 장려했다. 그곳엔 대략 유대인이 120명 뿐이었지만, 대부분 아랍계로 그들의 신앙은 러시아계 유럽인보다 격식이 더 엄격한 것 같았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Tigris) 강에서 온 유대인들이 우리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나는 이제 유대계 민족이 지난 1500년 동안 스스로 완벽한 순수성을 유지해왔다고 확신한다... 10일 아침에 나는 엘자(Elsa)와 함께 본토의 중국인 거주 지역을 방문했다. 근면하지만 더럽고 둔한 사람들이다. 집들은 매우 획일적이고, 벌집의 구멍처럼 늘어졌으며, 모든 것이 다닥다닥 붙어 있거나 단조롭게 지어졌다. 항구 뒷쪽으로는 식당에서 바로 맞은 편의 중국인들이 벤치에 착석하지도 않고, 쭈그린 채 유럽인들이 우거진 숲속에서 용변을 볼 때처럼 밥을 먹고 있었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얌전했다. 아이들조차 생기가 없거나 둔해 보였다. 만약 이들 중국인이 [특유의 다산 번식력으로] 다른 모든 인종을 밀어낸다면 유감스러워질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에겐 상상만 하더라도 형언할 수 없이 음울해지는 것이다.

어제 저녁엔 3명의 포르투갈인 중학교 교사들이 나를 찾아와 중국인은 논리적으로 사고하도록 훈련받을 수 없으며, 특히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남성과 여성간의 차이점이 얼마나 적은지 주목했다. 나는 중국인 여성들이 무슨 매력을 가지고 있길래 상대방 남자를 매혹시키고, 가공스런 출산에 맞서 단호하게 그들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1시, 기타노 마루(北の丸)호는 형체와 색깔은 마음에 들지만, 나무가 자라지 않은 녹색의 섬과 산들 사이로 반짝인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떠났다. 현재 홍콩에서 생생한 식물은 영국인이 가꾸었다고 한다. 그들은 뛰어난 통치 방식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치안 활동은 풍채가 당당한 외국 태생의 검은 인도인들이 맡았고, 중국인은 결코 쓰이지 않는다. 나중에 영국인들은 넘쳐나는 중국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적합한 대학까지 세웠다.

누가 그것에 필적할 수 있을까? 가엾은 대륙의 유럽인들은 '관용(tolerance)'을 통해 국수주의적 반대를 잠식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13일 오전 10시경, 상해(上海)에 도착했다. 평평하고, 그림처럼 황녹색으로 빛나는 강의 상류 기슭을 따라 이동했다. 나의 파이프를 친절하게 수리해 준 베른에서 왔던 2명의 스위스 장교와 광신적 애국자라는 점만 빼면 선량한 젊은 독일인 전직 장교가 떠났다. 상해에선 우리를 고베까지 데려갈 이나가키(稲垣)와 그의 부인, 독일 총영사인 피스테르(Pfister)씨 부부로부터 배 안에서 환영을 받았다. 먼저 점잖은 일본인과 미국인 기자 일동이 평범한 질문들을 던졌고, 그 다음 이나가키 부부와 중국인 2명이 중국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창문 너머로 시끄럽고 다채로운 중국식 장례식을 지켜봤는데, 야만적인데다 거의 우스꽝스러운 사건이었다.

요리는 극도로 정제되어 끝없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식탁 위에 놓여진 흔해빠진 작은 그릇으로부터 젓가락으로 빈번하게 고기들을 집었다. 나의 내장은 상당히 흥분하기 쉽게 반응했으므로 한창 무르익은 오후 5시 무렵 다정한 피스테르 부부의 말 그대로 안전한 피난처에 도착했다. 식후엔 중국인 지역을 산책하기 아주 좋은 날씨였다. 거리는 점차 비좁아지고, 온갖 오물이 말라붙은 보행자와 인력거들이 바글거렸으며, 공중엔 끊임없이 변화무쌍한 갖가지 악취가 풍겼다. 온순하고도 거의 무감각해 보이며, 거의 방치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암울한 다툼의 인상. 거리 저편엔 탁 트인 작업장과 상점들이 있고, 커다란 소음이 들렸지만 어디서도 다투지 않았다. 우리는 각 층마다 익살꾼들이 개별 공연하는 극장을 방문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일반인들은 언제나 환영하고, 매우 즐거워한다.

정말이지 사방이 더럽기 짝이 없다. 그 엄청난 부산함 속에서 안팎은 몹시 행복한 면상들이었다. 심지어 말 몰이꾼 신세가 된 사람들조차 의식적인 비참함의 인상을 주지 않는다. 짐승 떼 같은 이 괴상한 나라는 존경스런 배짱으로 항상 신경이 온전한 것이 인간보다 자동 제어 기구를 닮았는데, 가끔 실없이 히죽거리며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우리 같은 유럽인 방문객과 더불어 그밖에 특히 시선을 이끈 공격적인 손잡이 안경을 가지고 우스꽝스럽게 서로가 응시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서 앞서 칭찬했던 안식처를 구하러 자동차로 피스테르 부부의 널찍한 시골집에 갔다. 상쾌한 차가 나왔으며, 나중에 덕망있는 랍비(rabbi)와 8명쯤 되는 유대인 고관 대표들이 찾아와 매우 어려운 소통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나가키 부부와 차를 타고 어두운 오솔길을 거쳐 부유한 중국 화가를 위한 만찬장에 갔다.

- by 1922년 11월, 극동 여행차 홍콩과 상해를 방문한 자리에서 목격했던 현지의 감상을 일기에 수록하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덧글

  • 2019/12/25 17: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12/29 14: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KittyHawk 2019/12/25 22:54 # 답글

    아인슈타인 그 자신이 일본에서 느꼈던 것과 다른 감상을 보이네요.
  • 心月 2019/12/29 14:46 #

    홀로코스트를 지켜보고 나서 반성했다지만, 설마 왕년의 일기장에 담긴 본심이 들통날거라 예상했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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