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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11권, 오월국이 귀부해오다

태조(太祖) 건륭(建隆) 원년(960) 3월, 오월왕(吳越王) 전숙(錢俶, 錢弘俶)이 사신을 파견해와 즉위를 축하해주었다. 이로부터 매년 조공하였다. 개보(開寶) 7년(974) 겨울 10월에 강남(江南, 南唐)을 정벌하면서 조서로 오월왕 전숙을 승주(昇州) ・동남행영초무제치사(東南行營招撫制置使)로 삼아 더해주었다. 이보다 앞서 전숙이 판관(判官...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90권 (1), 삼봉산의 노을

이종(理宗) 보경(寶慶) 3년(1227) 5월, 몽고는 사신을 파견해 금나라에 세폐(歲幣)를 재촉했다. 6월에 금나라 사신이 몽고에 강화를 요청했다. 이달에 칭기스칸이 서하(西夏)를 멸망시키고, 서하왕 이현(李現)를 잡아 죽였다. 12월에 몽고가 경조(京兆, 長安, 섬서성 서안)로 들어가는데 관중(關中)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자 재차 군사로 관외(關外)의 ...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9권, 금나라가 하북과 산동을 상실하다

영종(寧宗) 가정(嘉定) 8년(1215) 겨울 10월, 몽고 황제는 어아락(魚兒濼, 내몽고 극십극등기)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삼모합발도(三摸合拔都)를 파견해 기병 1만을 거느려 서하(西夏)로부터 경조(京兆, 섬서성 서안)로 달려가게 했다. 금나라 동관(潼關)을 공격케 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숭산(嵩山)의 작은 도로를 거쳐 여주(汝州)로 들이...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8권, 사미원이 황태자를 폐립하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4년(1198) 8월, 경당(京鏜) 등이 황제의 후사가 없으므로 종실의 아들을 간택해 양육할 것을 간청했다. 조서로 태조(太祖, 趙匡胤)의 후사 연의왕(燕懿王) 조덕소(趙德昭)의 9세손인 조여원(趙與願)을 궁중에서 양육케 했는데, 나이 6세로 찾아내어 복주관찰사(福州觀察使)에 임명했으며, '엄(曮)'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위국공(...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7권, 이전(李全)의 반란 (2)

6월에 팽의빈이 이미 산동을 함락시키고, 이전의 투항병들을 다시 받아들이자 군사들의 기세가 크게 떨치어 이윽고 동평(東平)을 포위했다. 엄실(嚴實)이 몽고의 장수 패리해(孛裏海)와 은밀히 약조해 군사를 합쳐 공격하기로 했다. 몽고의 구원군이 오래도록 도달하지 않아 성안의 식량이 바닥나자, 팽의빈과 화의를 맺고자 했다. 팽의빈도 엄실이 하삭(河朔...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7권, 이전(李全)의 반란 (1)

영종(寧宗) 가정(嘉定) 4년(1211) 11월, 금나라 익도(益都, 산동성 청주시)의 양안아(楊安兒)가 반란군을 일으켰다. 처음에 익도 사람 양안국(楊安國)은 어려서 건달이었다가 안장 재료를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니 고을 사람들은 '楊鞍兒'라 불렀고, 이윽고 스스로 '楊安兒'라 이름지었다. [金章宗] 태화(泰和)연간의 남침[=開禧北伐의 반격] 당시 ...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6권, 남송이 금나라와 단교하다

영종(寧宗) 가정(嘉定) 4년(1211) 6월, 송나라는 금나라에 어렵게 사신을 보내 금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당시, 금나라는 몽고의 침공을 받아 송나라 조정의 사자가 왕래할 겨를조차 없었기에 탁주(涿州, 하북성)에 이르러 돌아오고 말았다. 겨울 11월, 금나라에서 전란이 발생해 [송나라에선] 강회(江淮)와 경호(京湖) ・사천(四川) 제치사(...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5권, 몽고의 흥기

영종(寧宗) 개희(開禧) 2년(1206) 12월, 몽고(蒙古)의 키야트(奇握溫) 테무진(鐵木眞)이 알난하(斡難河, 오논江)에서 황제라 칭했다[쿠릴타이, 元太祖의 즉위]. 테무진의 선조는 보돈차르(孛端叉兒)이며, 모친은 알란고아(阿蘭果火)로 아들 2명을 낳고 과부로 지냈다. 밤중에 취침하다 여러차례 뱃속으로 빛이 비추더니 다시 3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보...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3권, 개희북벌(開禧北伐)

영종(寧宗) 가태(嘉泰) 4년(1204) 봄 정월, 한탁주(韓侂胄)의 주장으로 금국 정벌을 결정했다. 당시 금나라는 북방의 타타르(鞑靼) 등 부족들이 소란을 일으켰는데, 해를 거듭하면서도 토벌되지 못하는 바람에 전쟁이 잇따라 화(禍)가 맺혔고, 사졸은 도탄에 빠졌다. 부고(府庫)는 탕진되어 텅비었으며, 국세가...

송고종(宋高宗)의 붕어와 묘호(廟號)논쟁

 효종(孝宗) 순희(淳熙) 14년(1187) 9월 계묘일, 태상황(太上皇, 宋高宗)에게 병이 생겼다. 겨울 10월 신미일에 황제가 조회를 중단하고, 태상황을 간병했다. 사면을 내렸다. 을해일, 태상황이 덕수전(德壽殿)에서 붕어하자 유조(遺詔)로 태상황후(太上皇后)를 황태후라 개칭했다. 황제가 통곡하며 가슴을 치고 펄쩍뛰면서 재신(宰臣) 왕회(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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