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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甲 금선종(金宣宗)의 통첩

금나라의 동경총관부(東京摠管府)에서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이첩(移牒)했는데, 대략 '옛날에 달단(韃靼, 타타르의 음역이지만, 여기선 몽고를 뜻함)이 흉악함을 믿고 국경에 침입했으나 벌써 2~3년전에 대군(大軍)과 강화하고 모두 가버렸는데, 그후에 거란(契丹)이 무리를 모아 변방을 침해하여 우리의 백성을 살륙하고 우리의 창고를 불사르니 황천(皇天)이 악덕...

金海陵王 총평

해릉은 재위 12년간 겉치레로 다스렸다. 거위요리가 수라상에 올라오면 거절하면서 얼핏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사냥때마다  으레 거위와 메추라기 1마리씩을 요구해 수많은 돈을 들였고, 소 1마리로 메추라기 1마리를 맞바꾸어 산 적도 있었다. 낡은 이불로  만든 옷을  군신들에게 보여주는가 하면, 옷을 꿰...

금나라의 최후

경인년(庚寅年, 1230)에 몽고는 군사를 파견해서 경조(京兆)를 취하도록 하였다. 7월, 오고타이칸이 친히 장수가 되어 금나라를 토벌했다. 태제(太弟) 툴루이, 조카 몽케(蒙哥)도 군사를 거느리고 따랐다. 신묘년(辛卯年, 1231) 2월, 오고타이는 봉상(鳳翔)을 함락시켰으며, 낙양과 하중(河中)의 여러 성(城)들을 공격해 탈취하였다. 8월, 몽고는 ...

금나라의 몰락

계유년(癸酉年, 1213), 금주(金主) 위소왕(衛紹王) 완안윤제(完顔允濟)는 재위 5년간 해마다 몽고의 침략을 받아 지탱할 수가 없었다. 장졸들의 신망을 잃어 호사호(胡沙虎)에게 피살당하고, 동해군후(東海軍侯)로 추폐(追廢)되고 말았다. 금나라는 풍왕(豊王) 순(珣)을 세웠으니 장종의 형이며, 이가 선종(宣宗)황제이다. 칭기즈칸은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금(金)과 몽고의 국교단절

경오년(庚午年, 1210)에 금나라는 몽고를 칠 계획을 세워 오사보(烏沙堡, 하북성 만전현 서북)를 쌓았다. 이에 태조(太祖, 元太祖 成吉思汗)는 장수를 파견하여 그 무리를 습격, 살해하고 금국을 경략해 동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칭기즈칸은 금나라에 세폐(歲幣)를 바쳤는데, 금제(金帝) 장종(章宗)은 위소왕(衛紹王) 윤제(允...

금나라 皇陵의 파괴

금나라의 황릉은 현재 北京의 서남쪽 운봉산(雲峰山)에 있었다. 이름이 있는 능침이 모두 17개이다. 이 산은 아홉줄기의 산줄기가 용처럼 뻗어있다고 하여, 구룡산(九龍山)이라 불렸다. 금나라의 황릉은 본래 흑룡강(黑龍江) 일대에 있었으나, 해릉왕(海陵王)이 천리길을 멀다않고 이장시킨 것이다. 이것은 중국 역사상 규모가 가장 컸던 황릉의 이장이었다. 기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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