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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도성의 명물이었던 전당강 조수 관람

임안(臨安)의 풍속은 사계절 모두 사치스러웠는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놀고 즐겼다. 서쪽으로는 호수[=西湖]의 풍광이 아름다웠고, 동쪽으로는 전당강(錢塘江)의 조수(潮水)가 볼만하였는데, 이 모두 훌륭한 경관(景觀)이었다. 매년 음력 8월중에 조수가 평상시보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때가 있었는데, 도성(都城, 杭州) 사람들은 11일부터 이를 구경하는 자가...

지존의 자리를 놓고 벌어진 두 가지 테스트

이제 우리는 더 나아가 황실 내부 상황을 고찰해야지만 비로소 효종(孝宗)이 결국 황위를 잇게 된 진상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 소흥(紹興) 30년(1160), 고종(高宗)은 효종을 황자로 세우기로 결정할 때 집정 대신들에게 말했다."이 일은 짐의 뜻에서 나온 것이지, 신하들의 건의 때문은 아니다.[此事出于朕意, 非因臣下建明.]"이 말은 진심어린 것이다...

당중우 사건에서 주희의 망상과 열폭을 보면

먹물 세계의 오묘함이라던지, 자칭 가방끈 길다는 고매하신 분들이 자존심에 흠집이 가면 얼마나 피해망상적으로 돌변하는지 절실히 증명해 보였다는 점에서 가관임.ㅋㅋㅋ 어제도 썼지만, 다시 한 번 간략히 정리해 봄.사연인즉슨 효종 순희연간... 정확히는 서기 1182년 여름.주희가 절동제거(浙東提擧)로 태주(台州)에 부임하...

나 잘난 성리학자의 자업자득인가...

"근자에 요사스런 무리들이 단지 '도학(道學)'의 명분으로서 정호(程顥)와 장재(張載)의 학설을 절취(竊取)한 것이 많아지고, 오래되어 어리석은 풍조를 만연시켰습니다. 권신(權臣, 趙汝愚)도 그 말을 힘써 주장해가며 사당(死黨)을 결성했습니다. 폐하께서 분명히 드러난 그들의 우두머리[罪魁=朱熹 등]를 잡아 파직시키고, 유배만 보내어 나머지 사람들을 불문...

남송이 안남국왕(安南國王)을 책봉하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17년(1147), 조서로 문사원(文思院)에서 말[馬] 안장을 제작해 [交趾의] 이천조(李天祚)에게 하사했다. 소흥 21년(1151), 거듭 이천조에게 '숭의회충보신향덕안원승화공신(崇義懷忠保信鄕德安遠承和功臣)'을 더해주었다. 소흥 25년(1155)엔 조서로 안남(安南)의 사신을 회원역(懷遠驛)에 투숙시켰으며, 연회를 베...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8권, 사미원이 황태자를 폐립하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4년(1198) 8월, 경당(京鏜) 등이 황제의 후사가 없으므로 종실의 아들을 간택해 양육할 것을 간청했다. 조서로 태조(太祖, 趙匡胤)의 후사 연의왕(燕懿王) 조덕소(趙德昭)의 9세손인 조여원(趙與願)을 궁중에서 양육케 했는데, 나이 6세로 찾아내어 복주관찰사(福州觀察使)에 임명했으며, '엄(曮)'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위국공(...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7권, 이전(李全)의 반란 (2)

6월에 팽의빈이 이미 산동을 함락시키고, 이전의 투항병들을 다시 받아들이자 군사들의 기세가 크게 떨치어 이윽고 동평(東平)을 포위했다. 엄실(嚴實)이 몽고의 장수 패리해(孛裏海)와 은밀히 약조해 군사를 합쳐 공격하기로 했다. 몽고의 구원군이 오래도록 도달하지 않아 성안의 식량이 바닥나자, 팽의빈과 화의를 맺고자 했다. 팽의빈도 엄실이 하삭(河朔...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7권, 이전(李全)의 반란 (1)

영종(寧宗) 가정(嘉定) 4년(1211) 11월, 금나라 익도(益都, 산동성 청주시)의 양안아(楊安兒)가 반란군을 일으켰다. 처음에 익도 사람 양안국(楊安國)은 어려서 건달이었다가 안장 재료를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니 고을 사람들은 '楊鞍兒'라 불렀고, 이윽고 스스로 '楊安兒'라 이름지었다. [金章宗] 태화(泰和)연간의 남침[=開禧北伐의 반격] 당시 ...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6권, 남송이 금나라와 단교하다

영종(寧宗) 가정(嘉定) 4년(1211) 6월, 송나라는 금나라에 어렵게 사신을 보내 금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당시, 금나라는 몽고의 침공을 받아 송나라 조정의 사자가 왕래할 겨를조차 없었기에 탁주(涿州, 하북성)에 이르러 돌아오고 말았다. 겨울 11월, 금나라에서 전란이 발생해 [송나라에선] 강회(江淮)와 경호(京湖) ・사천(四川) 제치사(...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83권, 개희북벌(開禧北伐)

영종(寧宗) 가태(嘉泰) 4년(1204) 봄 정월, 한탁주(韓侂胄)의 주장으로 금국 정벌을 결정했다. 당시 금나라는 북방의 타타르(鞑靼) 등 부족들이 소란을 일으켰는데, 해를 거듭하면서도 토벌되지 못하는 바람에 전쟁이 잇따라 화(禍)가 맺혔고, 사졸은 도탄에 빠졌다. 부고(府庫)는 탕진되어 텅비었으며, 국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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