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대만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1 2 3 4 5

중화민국의 배려하에 대략 마무리된 창경원 복구

벚꽃이 만개한 창경궁의 야경은 서울 시민에겐 아주 훌륭한 휴식처다. 1986년 제 이름을 다시 찾은 창경궁은 1909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궁(宮)을 원(苑)으로 바꾸고, 일부를 헐어내어 동식물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민족의 핍박과 함계 수난을 겪었던 창경궁은 필자[=윤우경]가 구(舊) 황실재산사무총국장 재임 시절 등 동식물원 복구를 위해...

우리 조선도 대만을 배워서 개과천선 좀 해봅시다?

대만(臺灣) 시찰단의 초기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인 관료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가운데 조선인도 있었다. 일행엔 당시 '한성은행 전무 취체역(取締役=理事)이었던 한상룡(韓相龍)도 동석했다. '친일 예속 자본가의 전형'이라 평가받는 한상룡은 일인(日人) 관료들처럼 대만 박람회 참가를 계기로 대만을 시찰했고, 그의 체험은 <매일...

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후기(後記), 을미년 대만(臺灣) 평정의 전역(戰役)

              대북(臺北)의 옛 포정사(布政司)에 개설된 대만총독부 경내 정원에서 기념 촬영중인 일본군 장교단          &...

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막바지, 팽호(澎湖) ・ 대만(臺灣) 상륙전

                   1895년 3월 23일, 팽호 본도(本島)의 동남쪽 이정각(裏正角)에 상륙중인 일(日) 육군 혼성여단    ...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장경국의 외유(外遊)

국부천대(國府遷臺) 이후 대륙이 수복되지 않은 전제하에 '절대로 대만을 떠나 외유를 떠나지 않겠다'는 방침까지 세웠던 장개석의 대리인격으로 장경국은 행정원 정무위원의 직함을 가지고 이따금 미국과 아시아 근린 국가들을 방문해 외교 교섭에 임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빈도는 지극히 한정적으로 장씨 부자(父子)의 입장에선 '대...

광복절(光復節) 축사(祝辭)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오늘은 대만 광복 33주년의 기념일입니다. 이는 영광의 날입니다. 왜냐하면, 대만 동포들의 50년의 압박 끝에 바로 33년전의 오늘 다시금 자유를 되찾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픔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중화민국(中華民國)이 14년간 항일(抗日)전쟁으로 무수한 인명의 희생과 무수한 재산의 손실을 감수하며 대만과 팽호(澎...

권력 과도기와 총통선거

장개석의 국상이 마무리된 직후, 국민당 중앙전체위원회는 임시회의를 개최하여 당헌(黨憲)의 개정을 거쳐 국민당 최고 지도자의 호칭을 총재에서 주석으로 바꾸기로 했다. 총재 명의는 영원히 장개석에게만 남겨둔 채, 이를테면 '국민당 총리'의 명의는 영원히 손중산에게만 남긴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은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한 셈이다. 당(黨) 수뇌...

자립자강(自立自强)의 대만

미국이 중국과 전격 국교정상화를 실행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현지사회는 거의 아무런 동요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예견되어온 사실이지만서도, 미국의 대중(對中)수교 발표는 자유중국으로선 일대 악몽이 아닐수 없었다. 가뜩이나, '닉슨 쇼크'로 서방국가와의 잇따른 국교 단절, 국제무대에서의 고립화 추세속에 누구나가 대만의 장래는 ...

신해혁명 68주년 기념퍼레이드

국제 고립에도 불구하고, 공산당과 어떤 타협의 가능성도 거부해왔던 대만의 대외노선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며, 이러한 강경자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집권 국민당(國民黨)은 공산 대륙과의 '괴리'를 유지시킴은 물론, 지난 4반세기간 급속한 경제발전을 구현, 아시아 2위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는 등 낙관적 분위기다. '강소국 중화민국'에 ...

불침항모의 낙관적 미래인가...

대만의 장래에 낙관적인 관측통은 이 나라를 '불침항모'라 부르곤 한다. 미중수교와 더불어 명분상으로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 선언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연한 별개의 독립국가로 존재중인 실력을 염두에 둔  말이다.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미국은 중공으로부터 대만의 안전을 보장받는 선에 이르진 못했으나, 북경측이 실제 무력행위에 돌입...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