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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조롱했다가 조카한테 떼굴멍 당하다

'인선의 치(仁宣之治)'라고 불린 인종(仁宗) 홍희제(洪熙帝)와 선종(宣宗) 선덕제(宣德帝)의 양(兩) 시대(1425~35)는 일반적으로 연속된 시대라 보고, 명 왕조가 창업에서 수성(守成)으로 이행되는 시대로 이해하여 왔다. 중국의 맹삼(孟森)은 일찍이 1930년대에 두 황제의 재위 기간을 일괄하여 하나의 시대로 볼 수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민족 풍속의 일소는 탁발씨처럼 해야 한다

예부상서(禮部尙書) 호영(胡濙) 등이 상주했다. "저번에 산동(山東) 좌참정(左參政) 심고(沈固)가 말하기를, 중외(中外) 관사(官舍)의 군민(軍民)들이 모자를 쓰거나 옷을 입는 것이 오랑캐 제도의 풍습이었습니다. 말하고 궤배(跪拜)하는 것도 오랑캐의 풍속에서 배웠으며, 갓끈을 드리우고 깃털로 장식했는데 정수리는 뾰족한데다 소매는 짧습...

금나라 皇陵의 파괴

금나라의 황릉은 현재 北京의 서남쪽 운봉산(雲峰山)에 있었다. 이름이 있는 능침이 모두 17개이다. 이 산은 아홉줄기의 산줄기가 용처럼 뻗어있다고 하여, 구룡산(九龍山)이라 불렸다. 금나라의 황릉은 본래 흑룡강(黑龍江) 일대에 있었으나, 해릉왕(海陵王)이 천리길을 멀다않고 이장시킨 것이다. 이것은 중국 역사상 규모가 가장 컸던 황릉의 이장이었다. 기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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