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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적화통일 4주년의 사이공

마지막 미군 헬기가 떠나간 지 4년여. 소위 '민족 해방'이란 미명의 클라이막스를 거치면서 30년만에 하나의 나라로 재통합되었으나, 간극의 골은 여전히 넓었다. 사회주의 건설과 집산화 개조의 광풍속에서도 자존심 강하고, 재기가 넘치는 사이공의 원주민들이야말로 월맹식 체제에 동화되지 않은 이 도시의 생리를 반영해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급격한 사회변동과...

남송이 안남국왕(安南國王)을 책봉하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17년(1147), 조서로 문사원(文思院)에서 말[馬] 안장을 제작해 [交趾의] 이천조(李天祚)에게 하사했다. 소흥 21년(1151), 거듭 이천조에게 '숭의회충보신향덕안원승화공신(崇義懷忠保信鄕德安遠承和功臣)'을 더해주었다. 소흥 25년(1155)엔 조서로 안남(安南)의 사신을 회원역(懷遠驛)에 투숙시켰으며, 연회를 베...

恐喝

안남국 국왕전하이자, 나의 형제여! 나의 애정과 호의가  담긴 편지를 성실하고도 믿음직한 동남아시아 '특명전권대사' 발레스티어(Balestier)군으로 하여금, 그대에게 전달하는 바입니다. ...나의 조국 합중국은 매우 광대한 나라이며, 많은수의 전함(戰艦)과 상선(商船)을 보유하고 있다오. ...청국과 시암에서는  매년 미국...

캄보디아 사태의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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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캄보디아 사태

미중(美中) 양국이  역사적인 축배를 들었던 올해 정초, 모스크바의 후원하에  베트남은 캄보디아 반군을 앞세워 프놈펜을 순식간에 짓밟아버렸다. 그 기습적인 군사행동  결과를  놓고  휴회중인 유엔 안보리가 부랴부랴 소집되었으며, 미국은 사후대책을 모색하느라 고심한 눈치다. 베트남전 이후 세계 어느곳에서 분쟁이...

인도차이나 난민

과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란 명칭하에 통합되었던 동남아시아 3국은 적화(赤化) 이후 정치 ・경제적으로 숱한 난제를 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피난민 문제는 가장 골치가 아픈 사례인데, 정권의 탄압을 피해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 불리는 해외탈출  러쉬가 이어지는 실정이다. 보트피플 러쉬는 197...

평화협정의 허실(虛實)

파리협정은 '베트남 포기'를 전제로 한 조약이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 온 '명예로운 평화'란 미사여구의 배후엔 전쟁에서 발을 빼기 위한 속셈이 있었다. 전사상(戰史上)으로 보아서 닉슨이 실천하였듯이 지상군 50여만을 투입했다가, 철수할 시엔 그만큼 많은 각오를 다졌던 셈이다. 특히나, 닉슨독트린이 아시아 대륙에서의 철수를 기본으로 삼았다는 점을 상기한다...

적치(赤治) 베트남

30년전쟁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4월 30일 오전 11시 30분, 사이공의 대통령궁(宮)에 베트콩 깃발이 게양됨으로서 유혈의 인도차이나 전쟁사(戰爭史)가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2차대전 직후부터 시작된 인도차이나 전쟁은 '반(反)식민 ・민족해방전쟁'이란 명분을 앞세운 항불(抗佛)투쟁에서 비롯되었고, 50년대 이후 냉전의 진행과 더불어 미국의 ...

함락의 순간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월맹군과 베트콩은 사이공 시가지에 무혈입성, 대통령 관저인 독립궁에 임시혁명정부 깃발을 꽂았다. 두옹 반 민 대통령은 평소 버릇인 조용한 미소로 감정과 피곤을 감춘 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민 대통령은 독립궁에서 베트콩 임시혁명정부 대표와 회동해 악수를 교환했으며, 이어서 사이공 방송은 대통령이 베트콩에 정권을 이양했...

유명무실한 평화

인도차이나 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협정이 체결된지도 1년이 지났다. 그러나, 협정의 발효와는 아랑곳없이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부터 다시 불붙기 시작한 포연(砲煙)은 하루도 쉬지않고, 인도차이나 전역을 휩쓸고 있는 실정이다. 휴전협정은 미국에 '명예로운 철수'란 명분만을 주었을 뿐, 진정한 평화를 이룩한다는 본래 정신은 계속되는 총성속에서 미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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