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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의 자리를 놓고 벌어진 두 가지 테스트

이제 우리는 더 나아가 황실 내부 상황을 고찰해야지만 비로소 효종(孝宗)이 결국 황위를 잇게 된 진상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 소흥(紹興) 30년(1160), 고종(高宗)은 효종을 황자로 세우기로 결정할 때 집정 대신들에게 말했다."이 일은 짐의 뜻에서 나온 것이지, 신하들의 건의 때문은 아니다.[此事出于朕意, 非因臣下建明.]"이 말은 진심어린 것이다...

지나친 닦달로 자식 농사를 망쳐버린 황제

<송사(宋史)> 광종기(光宗紀) 소희(紹熙) 2년(1191) 11월 기록을 보자. 신미일, 태묘(太廟)에서 제사를 지냈다. 황후 이씨(李氏, 李鳳娘)가 황귀비(黃貴妃)를 살해하고선 [황귀비가] 갑자기 죽었다고 소문을 냈다. 임신일, 환구(圜丘)에서 천지(天地)를 합제(合祭)하면서 태조(太祖) ・태종(太宗)을 배향했다. 큰 비가 내리고...

포기(抛棄)라는건 말이죠, 이럴때나 써먹는 단어죠

해상지맹(海上之盟)으로부터 정강지변(靖康之變)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외교 ・군사적 실책으로 중원을 상실하고, 남천(南遷) 이래 송(宋)의 정치 ・외교 ・군사 측면에 있어서 대금(對金)관계는 가장 핵심적 사안이었음이 분명하다. 송금(宋金) 양국간 교전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휴전협정인 화의(和議)와 종전 ・화평을 목표로 체결된 맹약(盟約)이 있는데, 양측의 실...

효종(孝宗)과 자치통감

송조(宋朝)는 중원을 금나라에 내주고 강남으로 남천(南遷), 중흥하여 여러가지 제도들을 새로이 제정해야만 했다. 중흥한 지 40년이 지난 효종대(孝宗代)에 이르러서도 조정내 부서의 업무 분장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듯 한데, 여기서 효종황제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읽고, 거기로부터 당태종(唐太宗)의 고사를 통해 업무 분장의 방침을 배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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