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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도 대만을 배워서 개과천선 좀 해봅시다?

대만(臺灣) 시찰단의 초기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인 관료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가운데 조선인도 있었다. 일행엔 당시 '한성은행 전무 취체역(取締役=理事)이었던 한상룡(韓相龍)도 동석했다. '친일 예속 자본가의 전형'이라 평가받는 한상룡은 일인(日人) 관료들처럼 대만 박람회 참가를 계기로 대만을 시찰했고, 그의 체험은 <매일...

이제 독일도 일본을 본받아 통석의 사죄를 표해야 마땅하겠지

독일, 1백년 넘은 나미비아 집단학살 공식 사죄한다獨, 나미비아 학살 사과 공동선언 준비중…배상 책임은 부인솔직히 말해 학살이니, 나미비아 침탈이니, 떠들어봤자 일반 독일인들이 그간 얼마나 관심 있었겠어?근대 정치사 조금 파봤다는 애들이나 '뷜로프 블록(Bulow Bloc)'으로 지칭된 제2제국 최초의 다수파 정당 연립내각이 ...

사진으로 보는 난인(蘭印) 총독의 베트남 여행

             바타비아 외곽의 탄중 프리오크(Tanjung Priok) 항구에서 출항 대기중인 조이데르크뤼스(Zuiderkruis)          ...

YS를 떠나보낸 해, 중앙청 청사와 반일의 상관관계를 그리며

지금까지 광화문 삼거리 정면에 버티면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더라면...석조전 제외 나머지 근세-근대의 문화 유적이 고갈되어 거의 전무하다 싶은 남조선인들이짝퉁 형식이라지만 엄연히 아시아 최대의 르네상스형 건축물을 가질 수 있었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깝지.이런 양식의 건축, 청사 건물 같은 근대 건축물이 또한 얼마나 고풍스럽고도 아름다운데?ㅠ...

이리안자야 해방에 관한 수카르노의 소회(所懷)

서부 이리안(Irian, West New Guinea) 문제로 위기가 조성되자, 서방인들은 나에게 또다른 칭호를 붙여 주었다. 내가 '전쟁 상인'이며, '팽창주의자'라는 것이었다. 1949년의 헤이그 원탁회의 당시 한 가지 미해결로 넘어간 것이 있었다. 거대한 뉴기니 섬의 서쪽으로 절반 가량이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

총독의 인사말

나는 20수년간 조선에 특수한 관계를 가졌었고, 특히 전(前) 총독 사이토(齋藤) 자작이 제네바 군축회의 출장중에 임시대리로 취임했던 적도 있어서 딱히 이곳에 대해선 항상 각반의 관심과 친애(親愛)를 가지고 있었다가, 지난번 대명(大命)을 받아 재차 조선통치의 임무를 담당하여 반도 2천만 동포의 선두에 서게된 것은 깊은 광영(光榮)이요, 또한 ...

포르투갈령 티모르의 풍경...(2)

지난편에 이어서 올리는 식민시대 말기 동티모르의 풍경들입니다.

포르투갈령 티모르의 풍경...

포르투갈령 티모르. 즉, 독립 직전인 식민시대 말기의 동티모르 풍경을 담은 사진들입니다.동티모르 하면 토산품으로 손꼽히는 백단향, 수려한 자연경관, 오랜 내전의  인상이 기억에 남네요.저당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반란을 진압하느라 정신없던 찰나, 티모르는 조용한 편이었다만,갑작스런 독립과 인도네시아 침공, 내...

1938년, 인도차이나의 컬러영상 캡쳐...

 1938년 말, 베트남 사이공과 메콩강 델타 일대를 촬영한 컬러영상을 캡처한 것입니다. 1차대전 휴전기념(전승기념일) 20주년 퍼레이드 ・메콩델타 유역의 농촌 마을 풍경이 담겨있는데, 프랑스군 퍼레이드와 삼색기를 보노라면, 이미 사양길로 접어 든 식민제국의 마지막 영광이었구나란 생각이 떠오릅니다.식민시대의 인도지나 컬러사진이야 몇 점...

척무성(拓務省) 신설(新設)의 필요성

내각은 장래 척무성(拓務省) 신설 방침을 확정, 다나카(田中) 수상이 9월 22일에 사이온지(西園寺)公을 방문하여 양해를 구하는 한편, 척무성 설치의 필요성 ・설치 요망 관제(官制) ・가라후토(樺太, 남사할린)의 사무소관 요항 등을 첨부한 팸플릿을 관계 방면에 배포, 일련의 홍보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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