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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의 배려하에 대략 마무리된 창경원 복구

벚꽃이 만개한 창경궁의 야경은 서울 시민에겐 아주 훌륭한 휴식처다. 1986년 제 이름을 다시 찾은 창경궁은 1909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궁(宮)을 원(苑)으로 바꾸고, 일부를 헐어내어 동식물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민족의 핍박과 함계 수난을 겪었던 창경궁은 필자[=윤우경]가 구(舊) 황실재산사무총국장 재임 시절 등 동식물원 복구를 위해...

전화(戰禍) 속에서 절멸당한 창경원의 동물가족

일찍이 19세에 고향인 강원도 회양(淮陽)의 이왕직 난곡(蘭谷) 목장에서 목동 생활을 시작으로 서울 경마장 기수와 왕실 마부직을 거쳐 창경원 사육사[苑丁]로 발탁된 박영달(朴永達)은 15년 사이 조류에서부터 맹수, 대동물까지를 두루 다뤄본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한 경력자였다. 일제시대의 사육사는 다른 직업보다 대우도 좋은 편이었으므로 그동안 다소의...

프린스 리 박사, 창경원 유원지의 폐쇄를 시도하다

해방 이후 창경원은 미군정(美軍政) 산하의 구(舊) 왕궁사무청에서 운영하였다. 그러나 서울시 운영이 논의되는 등 그 관리의 주체는 분명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구 황실재산관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운영했으나, 창경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관리는 체계적이지 못했다. 창경원을 일제의 유산과 결부시켜 인식한 대표적인 것은 창...

타임머신 타고 창경원 사쿠라 구경이나 가보자~

                 벚꽃 시즌을 맞아 창경원 정문으로의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 방송국 촬영차까지 출동했다.         &n...

다 썩어가던 고궁을 테마파크로 개조한 게 어때서?

해마다 서울의 봄을 장식했던 창경원의 벚꽃이 1984년의 개화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구(舊) 창경궁 복원 계획에 따라 동물원이 과천으로 이전하고, 식물원 전방의 1139 그루 가운데 1백여 그루를 제외한 나머지 벚나무도 군자동 대공원과 여의도, 남양주의 동구릉 등지로 각자 분산되어 옮겨 심었기 때문이다. 창경원에서의 마지막 봄을 아는...

꽃의 계절, 창경원 야앵회(夜櫻會)

창경원(昌慶苑)하면 바로 벚꽃을, 벚꽃하면 창경원을 연상하리만치 창경원의 벚꽃은 너무나도 유명했다. 온 국민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았던 벚나무가 창경궁 내부로 이식된 것은 대략 합방 전후였으리라 추정된다. 창경원 건립에 참여하고, 1945년 종전시까지 창경원장(苑長)을 역임했던 시모코리야마 세이이치(下郡山誠一)가 <조선일보>와의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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