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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美日)통상항해조약의 폐기

미(美) 국무성이 워싱턴 현지시각으로 7월 26일, 일본정부에 6개월 기한 예고로 1911년 체결된 통상항해조약안의 폐기를 통고했음을 발표하였다. 이날 오후 4시, 세이어(Sayre) 국무차관보는 스마(須磨) 참사관을 호출해 미국측의 의향을 설명하며, 헐(Hull) 국무장관 명의로 호리노우치 겐스케(堀內謙介) 주미(駐米) 일본대사에게 보내는 통...

아베내각 시절의 일본 정국

1939년 8월 30일, 前 대만군(臺灣軍) 사령관이자 육군대장인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가 총리대신에 임명, 아베 내각이 출범했다. 소수 ・강력주의 내각을 천명한 아베였지만, 군인으로서도 정치가로서도 결코 유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틀 후인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개시하고 3일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함...

1939년 뮌헨의 일본인들...

1939년 뮌헨을 방문한 駐獨 일본대사 오시마 히로시(大島浩)와 수행원들의 모습입니다.

아베 내각에 대한 어느 논평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대장은 1백퍼센트 무난한 인물이다. 히라누마 내각 퇴진 후의 국내외 정세가 일도양단적 수완가를 필요로 하는가, 혹은 마찰이 적은 인물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양론이 있었는데 아베의 기용은 후자, 즉 '융화'를 중시한 것이다..."-1939년 8월 29일자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논평

元老의 경고

"어전회의는 천황폐하의 결단을 듣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만약 히라누마 등이 말하듯 단지 결단을 듣기 위한 것이라면 보필의 책임은 다하지 못하게 되는게 아닌가... 결단만 듣기 위한 것이라면, 日英 협조 등의 문제는 우리가 아닌 그저 군부에게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일군만민(一君萬民)'이라고 하는데, 이는 높은 대나무 사다리 위에 폐하를 올...

예언자(?)의 호언장담

"우리 독일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전 유럽인들에게 의미있는 오늘, 나는 한 가지 분명히 하고자 한다. 나는 일생에 종종 예언자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나를 비웃었다. 권력의 쟁취를 위한 투쟁기간 동안, 나의 예언을 비웃음으로 치부했던 인간들은 유대인이었다. 나는 전 국민으로부터 국정 수행의 전권을 위임받고자 하며 이 지도자의 권한으로 많은 현안들 ...

히틀러, 폴란드戰 개전에 앞서...

"우리의 적들은 벌레일 뿐이다. 나는 그들을 뮌헨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전쟁을 개시하기 위한 선전용 구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럴듯하든 말든 상관없다. 승리한 뒤에는 진실을 말했는지 여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쟁을 시작하고 수행할 때 중요한 것은 공정함이 아닌 승리다. 동정심 따위는 집어치워야 한다. 냉혹하게 행동하라. 8천만 ...

1939년 10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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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4월 히틀러의 50회 생일 당시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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